“뉴욕대를 중퇴한 학생이 자신이 만든 수공예가구를 팔려고 웹사이트 하나를 만들었는데, 이곳의 매출이 지금은 한 해 5억 달러(약 570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터넷 인프라 덕분에 지금은 누구나 생산자도, 판매자도 될 수 있습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생산의 민주화와 마케팅의 민주화가 가능해집니다.”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왓튼스쿨 교수(67)의 목소리가 서울 종로구 엠스퀘어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그는 강연문화기업 ‘마이크임팩트’의 초청으로 대중을 상대로 ‘3차 산업혁명’에 관한 강연을 하기 위해 지난 5일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이번에 번역 출간된 책 ‘3차 산업혁명’의 부제인 ‘수평적 권력(lateral power)’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저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는 수평적 권력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으로 느껴집니다. 지난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top down)’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원칙이 바뀌고 있습니다. 전 세계 23억 명 사람들이 자기가 찍은 비디오와 음성, 메시지를 거의 무료로 지구 반대편에 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협업적이고 수평적인 권력이 가능해졌습니다.”

리프킨 교수는 전 세계가 3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며 지난 두 차례의 산업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위대한 경제 혁명이 일어나려면 ‘에너지 혁명’과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맞물려야 합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대량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작됐죠. 곧이어 전기와 석유 기술이 개발되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2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대공황을 거치며 몰락했다. 그리고 2차 산업혁명의 몰락은 지난 2008년에 시작됐다. 리프킨 교수는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발발한 경제 위기를 보며 2차 산업혁명에 대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리프킨 교수가 제시하는 3차 산업혁명은 재생에너지와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그는 3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5가지 핵심 요소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태양, 바람, 지열, 파력, 조력 에너지들을 활용하고 농업 임업 폐기물을 바이오매스로 활용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리프킨 교수는 재생에너지가 전 지구적으로 존재하는 만큼 일부 국가에서만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의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에 중앙집권적이 아닌 수평적 사고를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그는 전 세계의 건물을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발전소로 변형하자고 주장했다. 리프킨 교수는 “산업화 시대에 온난화를 일으키는 1순위 요인이 빌딩”이라며 유럽의 모든 빌딩을 자체적인 녹색미니발전소로 만든다면 일부가 독점하던 ‘엘리트적’ 에너지 구조를 벗어나 개개인이 자급자족하는 ‘수평적’ 에너지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천만 개의 신규고용을 창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때는 저장 기술이 필수다. 재생에너지는 불규칙하게 발생하므로 저장이 가능해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프킨 교수는 물에 에너지를 저장해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수소저장기술을 개발할 것을 주장했다.

리프킨 교수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나면 공유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듯이 ‘인터그리드’를 이용해 각자 생산한 전력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재생에너지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협업 관계로 엮인다”고 리프킨 교수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등 교통수단에 전원을 연결해,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공유하자고 했다. 2000년 설립된 ‘집카(Zipcar)’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공유 서비스 회사로 소액만 내면 공용 주차장과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들을 인용하며 리프킨 교수는 이제는 10살짜리 한국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자동차가 왜 필요해요? 공유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섯 가지 요소가 서로 융합될 때 의미가 있다고 역설했다. 미국 오바마 정부처럼 겉으로는 친환경 에너지와 인터그리드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화석연료 시대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정부와 기업이 수없이 많다며 구식 인프라와 기술에 머물면 미래에는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리프킨 교수는 “한국은 조선, 전자, 운송 분야에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필리핀과 호주 등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며 “시민사회, 기업, 학생, 교수, 정치인들이 모여 한국을 3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김수비 기자 hel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