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몬드라곤 본사 입구 photo 미디어오늘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수많은 금융·보험사가 문을 닫았으나 협동조합 은행은 위기를 잘 넘겼다. 협동조합 은행은 손실액이나 자산 상각액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은 전 세계적으로 한 곳도 없었다. 이 점은 유럽발 재정위기로 위기감이 큰 지금의 우리 경제·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위기에 강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원천적 지향 목표인 협동조합이 최근 99%를 위한 경제, 따뜻한 나눔의 경제를 지향하는 시대에 적합한 경제 모델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협동조합을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기치 아래 지난해 12월 대안적 기업 모델인 협동조합 형태의 법인격 창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했고, 올해 말 시행령을 공표할 예정이다.


경제민주화 촉매제 기대

협동조합법이 추구하는 협동조합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모범 사례는 ‘몬드라곤’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스페인의 버려진 변방인 바스크 지방에서 50여년 전 5명의 공동 창업자가 세운 난로공장에서 출발해 현재 8만4000명에 이르는 일자리를 만든 세계 최고의 협동조합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생산자협동조합으로 금융, 제조, 유통업, 지식서비스 부문까지 260개 회사, 총자산 53조원의 세계적 기업이다. 이렇게 성장한 배경과 동인으로는 1956년 창업 초기부터 아무리 어려워도 고통 분담을 통한 해고 없는 경영 원칙을 고수해온 게 가장 많이 얘기된다. 감축 및 일시적 실업이 있더라도 기업 정상화 뒤 다시 일터로 복귀시켰으며, 휴직 상태라도 월급의 80%를 지급했다.

다른 유명한 성공 사례는 이탈리아 북부의 볼로냐다. 볼로냐는 지역 전체가 협동조합의 도시다. 스위스의 경우 소매시장의 40%를 쿱(Coop), 미그로(Migros)라는 두 개의 협동조합이 점유하고 있으며, 특히 미그로는 직원이 8만명에 이르고 연간 총 매출액이 약 32조원에 이른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협동조합이다.

우리도 협동조합법을 제정한 만큼 다양한 협동조합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했다. 협동조합법 도입으로 예상되는 몇 가지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살펴보자. 협동조합법이 지향하는 협동조합은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자본이 중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적 결합체로서 민주적 경영 조직체인 협동조합을 육성하면 대규모 지배 기업의 부당한 활동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협동조합법에 근거한 두 가지 형태의 협동조합(일반 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중 사회적 약자층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면 사회안전망에 편입되는 계층의 폭이 넓어져 소득 양극화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경제의 거시 안정성 높인다

협동조합은 경제의 거시 안정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경기호황에 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하지 않지만 경기 후퇴기에는 생존율이 높고 사업을 지속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주장의 신뢰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 다른 기업 형태보다 협동조합이나 협동조합 은행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협동조합이 경제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근거는 협동조합은 은행 차입보다는 자본금 이용을 선호해 재무건전성이 높아 경제의 위기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끝으로 협동조합은 물가 안정에도 기여한다. 공급 면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이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유통 단계를 줄이고, 수요 면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의 소비자 교섭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협동조합의 형태는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을 직원들이 인수해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모델이 중소제조업만이 아니라, 도시의 생협과 연계한 친환경 농산물 분야, 서비스 분야 등 거의 모든 산업에 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협동조합 방식의 소자본 공동 창업이 이뤄지고 창업 성공률도 높아져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특히 교육, 돌봄, 자활 등 공공서비스 등과 같이 지역 주민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 계층에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자원 동원이 다양하고 수혜 대상자 욕구 파악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정부나 사기업이 나서기 어려운 새로운 복지 영역을 개척하는 데도 적합할 것이다.


전국 단위 설립도 가능

협동조합법으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협동조합이 활발히 태동될 영역을 유추해 보면, 영세상인과 소상공인, 자활공동체와 돌봄사업, 택배 등의 특수고용직 노동자, 초기 자본 동원이 어려운 청년 창업, 낙후 지역 주민의 사회안전망 구축,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보건의료, 공동육아, 문화예술 분야 등에서의 협동조합 설립이 예상된다. 지역 내 기존 사회적기업들의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동단위 생협의 설립 추진이 예상된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 용산에서 동자동사랑방(소액대출), 용산생협, 마을공방, 공동육아 등으로 협동조합 초기 생태계 구축 움직임이 있다. 이런 지역의 틀을 넘어서는 통신 소비자들, 남대문시장 상인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동네 슈퍼마켓 상인들, 상조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국 단위의 협동조합 설립도 가능하다. 노동을 자본가에게 제공하면서 봉급을 받는 것보다는 뜻 맞는 몇몇이 규합해 협동조합 기업 형태로 창업하면 그만큼 자본가에게 지불해야 할 대가를 노동 제공자인 협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돌릴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만으로도 이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노동 제공자 그룹들의 협동조합 설립 의욕은 넘쳐날 것으로 추론된다. 다만, 얼마만큼의 시장을 개척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경제적 성과’ ‘사회적 책임’ 두 마리 토끼

그러나 이런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처럼 계급의식과 평등의식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하거나 특수한 고용직 계층이 노동자이자 이용자인 협동조합 기업에서 제공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지 않게 취급당한다고 할 때 파업이 예상된다. 이런 파업이 사회적 협동조합의 특수 노동계층 영역으로 확대되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또 다른 사회갈등을 유발하거나 다방면에서 파행적인 새로운 노동운동이 탄생하진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협동조합이란 조직이 만능의 기업조직 형태는 아니지만 무한경쟁 시대에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협동조합의 설립이 활성화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문화적 측면에서 사적 이익이나 등가물 교환 이외에도 자율 규칙과 원칙에 입각한 경제적 행동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시켜야 한다. 둘째, 경제적 수요 측면에서 오늘날 ‘소비자 주권시대’에 소비가 생산을 이끄는 시대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소비자’가 등장해야 하고, 경제학적 효율성 측면에서 주식회사와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협동조합이 가진 긍정적 외부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측면에서 공정한 소득 분배, 역동적 효율성, 고도의 사회적 자본축적,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구축돼야 한다. 끝으로 정책적 측면에서 협동조합이 다른 법인격에 비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출처: 주간조선 2012년 7월 9일